20. 검은색의 옷 때문에 몸의 다른 곳에 무슨 상처가 더 있을지 알 수 없어 조심히 옷을 벗겨 온몸을 살폈다. 눈에 띄는, 피가 배여 나오는 상처를 젖은 수건으로 닦고 그 위로 거미줄을 쏘아 응급처치를 했다. 내가 미는 대로 밀리며 흔들리는 그를 바라보다 흐트러진 머리가 괜히 얼굴을 간질일 것 같아 뒤로 가볍게 넘겼다. 그를 뒤로하고 벤이 쓰던 방으로 가...
19. 며칠 만에 돌아온 저택은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내손에 몇 권의 낯선 책이 더 들려있다 한 들 그것을 신경 쓸 사람도 없다. 저택의 입구에서 만난 존은 나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넸고, 사용인들의 거처로 향하던 복도에서 만난 집사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잘 다녀왔냐는 기대도 안 했던 말을 건넸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이 그렇듯 ...
18. 단 며칠 만에 작은 서점 하나가 말끔히 정리됐다. 인기 있는 서적은 첫날 거의 다 빠져나갔고 꽤 흥미로운 내용의 서책들은 이튿날까지 모두 나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학식이 있는 자가 읽어도 꽤 어렵다고 느낄만한 철학책과, 지금으로선 연구 가치를 잃어버린 오래된 과학책들 뿐이었다. 타로카드를 보는 방법이나, 별자리 점성술, 찻잎 운세 보는 방법에 대한...
17. "푸우---" 손이 닿지 않을 높이에 있는 책장에서 책들을 꺼내자마자 뽀얗게 먼지가 피어오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는지 몇몇의 책들은 책등이 빛에 바래 누렇게 변해 있었고 일부는 가장자리가 터지고 갈라져 있기까지 했다. 아무도 찾지 않은 책이라면 싸게 준다 해도 가져갈 사람이 없을 테니 잘 모아뒀다가 종이가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넘겨야겠다 생...
어린이날 문득 '맷이 어려진 게 보고싶다'고 생각했다가... . . .
16. 젖은 풀잎들이 여러 사람의 발에 짓밟히며 풀비린내를 피운다. 속이 모두 뒤집어진 젖은 흙냄새가 사방에 퍼진 풀비린내를 모두 뒤덮을 때쯤 수레에서 내린 커다란 나무관이 파헤친 땅속 깊숙 한 곳으로 천천히 내려진다. 그에겐 친구가 많았는지 순수하게 애도하는 마음으로 삼사십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이제 ...
15. 달빛이 차다. 맞은 건물의 지붕 위에 자리 잡고 앉은 네 시선만큼이나. 마땅한 통성명도 없이, 반가운 인사말도 없이.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오던 네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는다. 나는 한 번도 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인사를 하기도 전 네가 먼저 용건을 뱉어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아무 용건도 없다는 듯 그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나를 얼어붙...
* 바로크-근대혁명기 AU * 늘어짐 주의 14. "같이 하면 어때요?" 하루 안 본 사이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던 '스파이더맨'차림새인 피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당겨 올라갈까 고개를 살짝 피했다. 그리고 내 앞에 당도한 그는 대뜸 좋은 제안을 할 게 있다며 내 대답은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듯 시민들의 볼멘소리를 한참...
* 바로크-근대혁명기 AU 13. 자정을 넘기고 새벽이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잠들지 못한 몸은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근질거리고, 억지로라도 잠들기 위해 머릿속으로 헤아린 양이 3천2백 마리가 넘어갔을 때쯤 양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결국 자리 누운 채로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고 눈을 꿈뻑이다 결국 몸을 조금 지치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
* 바로크-근대혁명기 AU 12.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맷을 찾아가 아침 시중을 들고 방안에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욕실로 향하는 그를 뒤로 하고, 읽다만 책은 테이블 위에 책갈피를 꽂아 정리하고 벗어둔 옷가지는 전부 정리해서 세탁실로 옮겼다. '어젯밤에도 또 없어졌대.' '어제도? 요즘 거의 매일 없어지는 거 아냐?' '낮에도 붙어 ...
* 바로크-근대혁명기 AU 11. 신났을 리가 없다. 피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겠지만, 그렇게 비춰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긴 했지만.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어 놓고 키스 안 하면 실망할 텐데.' '... 그럼 키스할까?' '진도 빠르시네요. 두 번째 보는 거 아니에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한숨과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뒤섞인 대답을...
MCU 썰공장 운영중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