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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에그시] 사슴반 선생님

리퀘박스 17 180526 리퀘 [해리에그시] 사슴반 선생님




해리 40대초반, 에그시 20대후반.
파워시점전환, 막전개, 오타, 비문 주의

 






"안녕히가세요."


두손을 배앞에 대고 아이한테 살짝 허리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안녕히가떼여."


저에게 인사를 하는 선생을 따라 어눌한 발음으로 같은 인사를 한다. 이럴땐 가시라는게 아니라 계시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상황임에도 아이 아빠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잘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가 다시 시선을 올려 아이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짧은 목례를 할때 그는 조금전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네, 안녕히가세요."


손에든 스케치북을 달랑거리는 아들과 손을 잡고 유치원 문앞에 주차해둔 차의 뒷문을 열었다.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여미고 뒷문을 닫고는 운전석 문을 열어 다시 살짝 고개를 돌린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뒷차에 앉은 아이를 보며 손을 흔들다 다시 아이 아버지와 시선을 맞췄다.


"저 실례지만."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살짝 갸우뚱한 그의 얼굴에서 보기좋았던 미소가 어느새 사라졌다.


"이번주말에 그... 조지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해서요."
"아..."
"그게 제가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네."


다시 맑게 웃는다.


"괜찮아요."
"... 감사합니다."


아이 아빠도 그를 보고 다시 미소지었다.


"제가 오후에 일이 있는거라..."
"점심전에 갈게요."
"...네."


가벼운 목례로 한번더 작별인사를 한 아이 아빠는 차에올라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가고 신호에 걸려 잠깐 멈춰선 사이 그는 주먹으로 가볍게 핸들을 쳤다.


"조지."
"응."
"너 안크면 안되냐?"
"모라고?"


너 유치원 졸업하지 마라 진짜. 아빠는 진심이다.



* * *



침대에 자리하고 누운지 여러시간이 지났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제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눈도 빨개지고 얼굴도 부을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양을 325마리까지 세도록 잠이 오지 않아 에그시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덜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꺼낸 우유를 하얀 머그컵에 따르고 전자렌지에 넣어 돌린다. '띵'소리와 함께 따듯해진 우유를 꺼내 한모금 마셨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은 도무지 가라앉을줄을 모른다.


"이 정도면 약먹어야 하는거 아니야?"


한손에 우유를 들고, 다른 한손으론 자신의 왼쪽가슴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쉬며 웃었다.


"하아..."


물론 평소와 같은 금요일 저녁이라면 전혀 잠이들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TV를 틀어놓고 드라마를 보거나, 근처 영화관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와도 그만인 시간이었다. 그 올바르지 못한 버릇때문인지 도저히 잠이 들지 않아 에그시는 난데없는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아으.. 늦게 일어나면 안되는데."


숨을 내쉬곤 다시 우유를 한모금 들이켰다. 어디선가 이렇게 하면 잠오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 머릿속의 그분이 도저히 잠이 오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여느때보다 밝게 웃어보이는 그의 미소가 지난 며칠간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며칠사이 아이를 배웅할때마다 나타난 그는 웃으며 인사했고 또 오늘은...


'혹시 댁이 이 근처시면 제가 모시러 와도 될까요?'


심지어 찾아오겠다고 했다.


"제발 잠 좀 와라."


애 봐달라고 부탁해놓고 미안해할 사람인데 그 앞에 시뻘건 토끼눈을 하고 나타나서 하품을 찍찍 해댈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푹자고 이쁜 눈, 고운피부로 나타나도 모자를 마당에... 그나저나 옷은 뭘입지. 조지는 워낙 혼자 잘 놀아서 교육용 앞치마는 필요없을거고...


"아, 잠깐만."


손에 들린 우유를 한번에 들이킨 에그시는 바로 옷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옷을 뒤적였다.

바지는 이거... 아냐, 이건 활동하기 불편해. 이거... 는 구김이 잘가고. 그럼 이거.
셔츠는 하늘색? 분홍색? 흰색? 밝은색은 더러워지려나? 조지 식사도 챙겨주고 해야 하니까 회색티셔츠? 아니야, 티셔츠는 좀 놀아보일거야. 그래도 좀 깔끔하게 셔츠로... 이건 구김이 잘가는데.

데운우유의 효과였을까.
오히려 잠이깬 에그시는 그 이후로 2시간정도 잠이 들지 못했다.



* * *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골목입구에서 만난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했고 에그시는 차 뒤로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주말에 쉬셔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아, 저..."
"네?"


그를 향해 돌아보자 그는 제 몸쪽을 손끝으로 살짝 가리킨다. 뭘 흘렸나 싶어서 고개를 내렸지만 뭔가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하늘색이 문제 인건가? 제 몸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으니 갑자기 '딸깍'하는 안전벨트 풀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팔이 제앞으로 불쑥 들어왔다.

순간 숨쉬는것도 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코앞으로 다가온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어 '지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멀어진 그의 손끝에서 다시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 차가 안전벨트 위치가 잘 안보이거든요."
"...아...네."


순간 오해했네.
살짝 고개를 돌리고 티나지 않게 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아마도 홍조를 띄고 있을 것 같아 지금은 진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흥분한것 처럼 보이고싶지는 않았으니까. 오른손을 들어 손등을 볼에 대자 제 생각보다 더 뜨거워진 것이 느껴진다. 으... 제발 가라앉아라 제발. 근데 향기 되게좋다... 무슨 향수 쓰는거지.


"많이 피곤하시죠."
"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어느새 출발한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에 올랐다. 신호에 걸릴때마다 해리는 살짝 시선을 돌려 에그시를 살폈고 그럴때마다 에그시는 눈을 감거나 시선을 피하며 창밖을 구경하는듯 두리번 거렸다. 어차피 여기까지는 자신의 동네나 다름없는 곳일텐데 그의 행동이 괜히 사랑스러워 해리는 다시 엑셀을 밟으며 피어오르는 미소를 감추느라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조지가 말썽을 많이 부리죠?"
"네? 아니요, 착해요."
"집에서는 제 말도 잘 안듣는데 유치원에선 안그런가봐요."
"네. 뭐든 다같이 하는게 있으면 곧잘해요. 친구들하고 싸우지도 않고 의젓하구요."
"양치도 잘해요?"
"그럼요. 다같이 양치하는 시간엔 먼저 칫솔들고 와서 서있어요. 집에선 안그래요?"
"하하하. 네. 어제도 양치 안하고 자겠다고 해서 한참씨름했습니다. 요즘 부쩍 말을 안들어요."
"아버님께서 워낙 바쁘시니까 투정부리나 보네요."
"제 생각엔 선생님을 좋아해서 선생님 말만 듣는것 같은데요."


말은 마친 둘은 가볍게 웃음소리를 냈고 에그시는 그제야 풀리는 긴장감에 가방이 구겨지도록 힘주고 있던 손을 살짝 풀며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에 쉬셔야 하는데 이렇게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전 좋아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네. 그러니까 이 일을 하죠."


대답이 조금 늦게 나왔다. 진짜 그순간 하마터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부탁 안들어준다'는 말을 뱉을뻔 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구멍 넘어로 집어넣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잠시 눈을 굳게 감았다.


"다왔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에그시는 차를 등지고 서서 눈앞의 집을 바라봤다. 흰색으로 바른 페인트와 창틀의 작은 화분들.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자동차를 갖고 놀던 조지.


"선생님!!"


밝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에 에그시는 밝게 미소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거실에서 조지와 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동안 부엌에선 조리기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맛있는 냄새가 피었다. 도와주겠다는 말도 극구 거절하던 그는 꽤 솜씨가 좋은 편인 모양이었다.


"맛있는 냄새난다."
"그러게."
"우리아빠 음식 되게 잘해요."
"그래? 조지는 그럼 뭘 제일 좋아하는데?"
"아빠, 그거 이름 뭐였지?"
"코티지 파이."


앞치마를 한 해리가 다이닝룸의 문틀에 기대어 가볍게 대답하고 미소 짓는다.


"맞아. 코티지 파이. 그거 맛있어요."


해리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에그시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겨우 조지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미소지었다.


"선생님은 만들때마다 실패하는데. 조지는 좋겠네."
"진짜요? 우리아빠 잘하는데. 아빠, 그거 만들어줘."
"이미 만들었는데? 자, 밥먹자. 선생님도 오세요."


뒤로 돌며 앞치마 자락에 손을 닦고 허리리본을 푸는 그 동작에 에그시는 입술을 깨물고 두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진짜 화장이라도 하고 왔어야 했다. 아니, 이렇게 얼굴 붉힐일이 많은지 알았냐고.


"선생님, 어디 아파요?"
"아니. 가자."


그래, 아프다. 너네 선생님 서른도 되기전에 심부전 오겠다.



* * *



정장 차림을 하고 문앞에선 해리는 현관앞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마지막 단장을 했다. 잠시뒤 막 나가려는 기척을 느낀건지 공룡인형을 들고 있던 아이가 쫓아나와 그의 앞에 섰고 아이를 따라온 에그시는 아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 갔다올테니까 선생님말 잘듣고."
"응."
"자, 뽀뽀."


키를 낮추고 고개를 돌리자 아이는 귀엽게도 입술을 제대로 오므리지도 못하고 그의 볼에 뽀뽀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타이밍에 눈을 마주칠건 또 뭐람. 이러니까 꼭.... 출근길 배웅하는 부인같잖아.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마주친 둘의 시선이 생각보다 꽤 긴 시간동안 떼어지질 않았다. 호감있는 상대의 출근길 배웅이라니.


"아, 맞다."
"네?"
"나 가방 어디 뒀지?"
"아..."


그의말에 에그시는 생각이 났다는듯 다이닝 룸으로 가 식탁 의자에 눕혀뒀던 그의 서류가방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 그와 동시에 가까이 선 거리감에 에그시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고 해리는 살짝 미소지은 얼굴을 하며 그를 내려다 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원숙한 그의 장난에 에그시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해리는 미소지으며 몸을 돌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선생님."
"....."
"선생님!"
"어? 어?? 응. 조지 왜?"
"어디 아파요?"
"...나? 아니? 괜찮은데, 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숙이니 고사리 같은 손이 제 이마를 가만히 짚고는 그 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열나요. 아빠방에 체온계 있는데. 그거 물고 있으면 나아요."
"아냐. 선생님은 괜찮아."
"지금 엄청 뜨겁단 말이예요. 빨리빨리."


고집부리는 아이가 제 손목을 잡아 집의 안쪽으로 이끈다.
오, 제발. 선생님은 아직 너네 아버지 방에 들어갈 준비가 안됐는데...



* *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 해리는 부지런히 집으로 들어와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막 잠든건지 새근새근 작은 숨을 내쉬는 아이와 그앞에서 소리내지 말라는 듯 검지손가락을 입앞에 들어보이는 에그시에 그는 짧은 숨을 뱉으며 미소지었다. 조심히 아이방 문을 닫고 나온 에그시는 자신을 따라 나오는 해리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레를 쳤다.


"밤이 늦었는데 그래도..."
"늦은시간에 아이 혼자 집에있는건 좀 그렇잖아요. 잠깐이긴 해도. 전 택시타고 가면 되요."
"그럼, 택시 불러드릴게요."
"이 앞에 나가면 바로 큰길이던데요."


전화기를 드는 해리의 손위로 에그시의 손이 살포시 내려앉으며 그의 행동을 막았다. 그의 아무런 감정없는 행동에 해리는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피는 것을 억지로 힘주어 내렸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주말에도 일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아까 낮과는 다르게 현관앞에선 에그시가 집안쪽에선 해리에게 시선을 올리고 가볍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뭐라도 말할것 처럼 살짝 벌어졌던 해리의 입술이 몇번 달싹거리다 다시 다물렸다.


"그럼, 월요일에 뵐게요."
"... 저, 언윈 선생님."
"네."


그러니까 무엇부터 말해야할지를 몰랐다. 만나는 사람 있냐고? 언제 시간 되냐고? 뭐 좋아하냐고?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불러세운 저를 잠시 탓하고 있으니 그의 머리위로 더 큰 물음표가 띄워진듯 갸우뚱거린다.


"주말에 시간되세요?"
"....다음주요?"
"네."
".... 아마도요? 다음주도 바쁘세요?"
"네?"
"주말마다 일하시기 힘드시겠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눈을 굳게 감았다 뜨며 겨우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같이 식사.... 안하실래요?"


멍해졌던 그의 눈빛이 두어번 꿈벅 거리다 제 말을 알아차린건지 동그랗게 띄여지며 숨을 삼킨다. 곱고 하얀 피부가 순식간에 붉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일단 긍정이라는 걸까?


"네, 좋아요."


오, 아들.
너 제발 자라지 말아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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