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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에그시멀린] 동행

리퀘박스 03 180203 [해리x에그시x멀린] 동행

* 알오au, 엠프렉 주의
* 킹스맨1,2 스포주의 (그리고 영화를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장면 다수)
* 19금소재약간. 막전개주의. 오타비문 주의
* 총 42,840자 (1만자 이후 유료기재)



해리에그시, 멀린에그시 






'넌 킹스맨이 찾던 인물이다.'  
'그럼, 당신한테는요?'


손에 들린 마티니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책상의 의자에 뒤로 기대어 앉은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티니로 가볍게 입을 축이곤 시선을 내렸다 다시 올려떴다.


'자리에 앉을때 허락을 받았어야 한다면, 자리에서 일어날땐 어때요? 그것도 허락이 필요한가요?'
'일어나서 무엇을 하려는가에 따라 다르지.'
'지금 일어나서 당신한테 키스할건데.'



조용한 미소를 띄며 저를 가만히 바라만 보던 해리는 제손에 들렸던 마티니를 한번에 삼키고 끝에 달린 올리브를 작게 한입 물어 씹었다.


'No, Eggsy'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천천히 저에게 걸어온다. 잘빠진양복과 흐트러짐없는 모습은 언제나처럼 술기운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저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입술을 열어 저에게 다가온 그가 뭐라 속삭인다.


'뭐라구요?'



다시 작게 뭐라고 속삭이고, 시선을 마주하고 입모양을 움직인다. 왜 아무말도 안들리지?


'해리?'



저를 보고 미소지으며 무어라 소리없는 속삭임을 전하던 그의 왼쪽눈에서 피가 흘렀다.


'해리!!!'


그 얼굴을 잡기위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인데도 손이 닿지 않아 몸을 내밀었지만 그는 조금씩 멀어지기만 할뿐 그의 옷깃하나 만질 수가 없었다. 피가흐르던 눈가는 어느새 꺼멓게 죽어갔다.


'해리!!!'



자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
.
.




"에그시!"


이게 누구 목소리지?


"에그시!! 일어나!"


완전히 펴지지 않은 조금은 불편한 자리에서 길게 누워 잠에 빠져있던 에그시는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소스라치며 놀라선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고 숨을 몰아쉬었다. 노란빛 조명이 비추는 비행기 안엔 둘을 제외하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 어떤 엔진의 잡음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볼때 비행기는 이미 오래전 목적지에 도착한듯 했다.


"어디예요?"
"런던이지 어디겠냐. 무슨 꿈을 그렇게 꾸는거야."


창문덮개를 열어 활주로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에그시는 찌뿌둥 거리는 몸을 삐걱거리며 일으키곤 양손으로 옷매무새를 서툴게 다듬었다. 잘려나간 넥타이, 먼지를 뒤집어쓴 바지밑단, 총알자국등 상처가 난 수트, 코 밑엔 핏자국 까지. 뭐 하나 제대로된 구석이 없었다.


"꿈이요? 나 잘 잔 것 같은데."
"피곤한것 같아서 그냥 냅둘까 하다가 땀을 한바가지를 흘리고 뒤척이길래 깨운거야."
"뭐지.. 기억 안나는데."


멀린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는 듯 두리번 거리는 에그시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괜찮니?"
"네? 뭐가요?"
"그냥 뭐 이것저것."


멀린의 걱정 가득한 눈을 보던 에그시는 한참 그의 시선을 마주하다 짧은 숨을 뱉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나 쫌 멋있었죠?"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익살스런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리는걸 보니 몸 어딘가 문제가 있는듯 했다.


"일단 본부로가자. 검사부터 받고..."
"수트 하나만 새로 할 수 있어요?"
"... 그래. 뭐 일단 내가 해주는 걸로 하지."
"...."
"아직 요원으로 등록되진 않았잖니."
"....제가 요원이 되요?"


에그시는 멍하기 보단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널 갤러해드자리에 추천할 생각이다."


그말에 에그시는 '피식'소리를 내고 웃으며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멀린은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다.


"아서도 죽고 없는데 누구한테 추천을 해요."
"차기 아서에게."
"...."
"누군가 죽으면, 또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 너와 네 아버지가 랜슬롯의 후보였듯이 말이야."
".... 그럼... 해리자리는 누가 채워요?"
"갤러해드 자리엔 내가 너를..."
"아니요. 해리요. 해리 하트의 자리요."


에그시의 꼭쥔 두주먹이 잘게 떨린다. 그 자리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거 문 어떻게 열어요?"


다시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흐트러진 뒷모습을 본 멀린은 작은 한숨과 함께 손에 든 패드를 들어 몇가지 조작버튼을 눌렀고 마지막 키를 누름과 동시에 비행기의 문이 느리게 열리며 아래로 계단이 펼쳐졌다.


"먼 비행인데 수고했네, 파일럿."


고개를 돌려 윙크를 하곤 저한테 한소리를 들을까 무서웠는지 에그시는 빠른 걸음으로 '탁탁탁'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 소리 한 번만 더하면 죽는다!"
"하하하. 본부에서 봐요. 그리고 정장하나 멀린이름으로 달아놓을게요!"



-



"갤러해드."


새로운 아서가 부르는 말에 잠시 멍한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보던 에그시는 이내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군대가 아니니 그렇게 크게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네, 알겠습니다."
"가족들은 새로운 거처로 옮겼다고."
"네, 꽤 멋진 곳으로 마련해주셨더라구요."
"가족들과 단란히 보내는데 미안하지만 금방 또 미션을 가야 할 것 같네."
"네. 뭐든 맡겨만 주세요. 가만히 있는것 보단 역시 움직이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죠."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기분좋게 말을 이어가는 에그시가 즐거워 보이기 보단 오히려 안타까워보였다. 힘을 내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건가. 따라죽겠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멀린?"
"음?"
"브리핑 안해줘요?"


이런, 왜 눈이 계속 마주친 상태인가 했네.



-



'죄송한데, 왜 저한테만 낙하산을 안주신거죠? 전 죽어도 괜찮다 이겁니까?'



그럴리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땅을 찰 기세로 저에게 덤벼드는 그를 보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누르곤 가까이 와서 직접 귀에 대고 얘기하라 불렀다. 화가난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한마디를 더할 요량으로 제 귓가에서 입을 열고 숨을 뗀다.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좀 풀어줄까.'



저는 그의 허리 뒤로 손을 감싸며 그가 흠칫하는 사이 낙하산 줄을 당겼다. 저멀리 나가떨어지는 당황스런 얼굴이 볼만했다. 코끝에 잠시 스친 그의 땀냄새와 긴장이 풀어져 저도 모르게 퍼지는 알싸한 오메가 향기에 난 패드의 전원을 끄고 그에게서 물러서 먼저 자리를 떴다. 등뒤로 녀석의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실린 녀석의 향기가 제 머릿속을 더 어지럽히기 전에 자리를 떴다.


'킹스맨 요원들은 연애하면 안된다는게 사실인가요?'



녀석의 뜬금없는 질문에 다른 녀석들이 피식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넌 그게 왜 궁금했을까.


'사실이다. 명문화 되어 있고 지켜야할 규율이지.'
'근데 만약 그랬다면 저는 여기 없었을텐데.'
'경우에 따라 규칙을 깨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혹시 이 안에서 마음둔 사람이라도 생긴거라면 지금 접는 것이...'
'아니요. 여기엔 없습니다.'


네가 마음둔 킹스맨 요원이 여기에 없다면 어디에 있길래 킹스맨의 규율을...
아, 한 사람 있군.

질문을 하는 에그시의 손끝에서 작은 팬던트가 빙글거리며 돌았다. 물음의 형태로 보건데 녀석은 고백을 했고 또 상대는 규율이 어쩌고 하면서 거절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둘을 이어 준 것은 나 자신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종 후보는 전통대로 24시간을 함께보내고 본부로 복귀합니다.'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다음날 얼마나 꽃처럼 피어 나타났는지 다른 이들은 모를것이다.



-



몇잔째 일까.
손에들린 작은 잔을 입으로 털어넣은 에그시는 웃지도 울지도 않고 다시 비어버린 잔을 눈높이로 들어 살살 흔들었다. 비어버린 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건지 그 눈빛 만큼은 또렷하게 반짝였다. 그래 잊었다면 그게 이상한거지.


"마티니 하나."


에그시의 옆자리에 앉으며 술을 한잔 주문했지만 그는 지폐를 내미는 손을 한번 힐끔 봤을뿐 저에게 아는 척을 하거나 인삿말도 건네지 않았다. 멀린은 손끝을 튕기며 바텐더를 불렀다.


"여기 이 친구 이거 몇 잔째 입니까?"
"12잔이요. 저도 입있어요. 묻고 싶은게 있으면 저한테 물으세요."


어깨를 으쓱인 바텐더는 멀린에게 눈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를 비웠다.


"대답할 정신은 있는 모양이군. 12잔이나 마셨으면서."
"네, 보통 20잔까지는 기억하고 마셔요."
"20잔도 넘게 마신적도 있단 말이야?"
"그럴걸요.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 안난 적도 많은데."


솔직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고 연거푸어 술이 들어가는 동안 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바에 있던 다른이들이 그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그냥 서로 모르는 남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에그시의 말대로 20전 정도가 넘어갔을때 그는 자신의 몸도 바로 세우지 못하고 바에 반쯤 늘어져서 바텐더에게 다시 술을 시켰다.


"그만하지."


대답도 안하고 손을 까딱이며 마티니를 시키고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이 맛이 아닌데."


멀린은 그말을 하는 에그시를 가만히 바라보다 제 앞에 놓인 마티니를 들어 단숨에 삼켰다.
그래 ,이 맛이 아니겠지.


"보드카 말고 진으로, 베르무트를 따지말고 10초간 흔들어서."
"...해리..."


에그시는 겨우 입술을 달싹이며 낯익은 이름을 불렀고 둘을 번갈아 보던 바텐더는 멀린의 주문대로 한잔을 내어 에그시에게 내밀었다. 에그시는 그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맛을 보더니 이내 미소지으며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바로 다음 주문없이 자리에 엎드려 흐느꼈다. 위로차원으로 개입한건데 아무래도 실수 한 모양이었다.


"집으로가자."
"내가...... 내가..."
"알았다 에그시."
"....내가 해리한테... 나쁜말을 했어요..."


우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못하고 하던말도 끊긴다.


"해리가.... 상처받았을거야."
"걱정마. 그라면 널 용서할테니까."
"사과 해야돼...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에그시."
"말을 못했어요..."
"괜찮아. 괜찮다."
"멀린... 나..."
"그래."
"....해리가 너무 보고 싶어요..."


이 무너지는 마음을 무엇으로 감추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너는 처음부터 킹스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정이 많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두명이나 되는 킹스맨 정예요원을 정신못차리게 만들고 말아버리니.



-



집으로 데려와 소파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간단하게 신발부터 벗기니 술에취한 에그시는 베실대고 웃으며 제 페로몬을 풀었다. 앞에 누가 있는지 전혀 의식도 하지 않는 듯 했다.


"에그시. 네 집이니까 봐주겠는데,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최소한 알파라는 자각은 있어야지."
"헤헤..."


울다가 퉁퉁 부은 눈을 해서 이제 웃기까지 한다.
해리하트 당신정말. 이 사랑스러운 녀석을 잘도 구워 삶았네.


"자켓 벗고. 아이고, 몸좀 일으켜봐. 늘어지니까 무겁잖아."
"나 무거워요? 으응?"


제법 귀여운 소리를 내며 꼬인 발음으로 술주정을 해댄다.


"응. 무거워. 자 여기 팔 빼고."
"나 안무겁다며~"


자신은 그런말을 한 기억이 없다.


"언제는 깃털 같다고 해놓고오오."


그말을 들으며 멀린은 그의 자켓을 들고 몸을 일으키며 한숨같은 웃음을 뱉었다. 이 양반 애를 상대로 그런소리까지 한 모양이군. 안아 올릴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어디가요. 이리와 빨리."


자리에 일어서니 어딜 가는줄 알았는지 녀석은 팔다리를 뻗어가며 저를 붙잡았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자, 왔으면 굿나잇 키쑤우우."
"이 녀석아! 이거 이러다가 아무나 잡고 키스하자고 하겠네! 너 술그만마셔!"
"아, 왜애. 키스 해줘요. 키스!"


통통한 핑크빛 입술을 쭉 내밀고 키스를 해달란다. 넌 내가 지금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겠지. 옛동료의 애인을 마음에 담고 또 이젠 입술까지 탐하려고 하고 있다고. 아무리 죽어 없어진 동료라고 해도 말이야.


"입술 넣어."


손바닥으로 입술을 꾸욱 누르자 녀석은 베시시 웃으며 손바닥의 한가운데를 혀로 핥았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그래, 모르겠다.

저역시 술에 취했고, 또 그핑계로 자세를 낮춰 그 귀여운 입술을 살며시 머금었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이 입술사이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해리..."


질척이는 입술사이로 낯익은 이름이 불려졌다.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이어지던 키스를 아예 멈출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나를 착각해라. 네가 사랑했던 그사람으로. 난 그사람이 되어 너를 안을테니.



-



"아우 머리야..."


잠에서 깨 몸을 뒤척이던 에그시는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옆으로 누웠던 자세를 돌리다 등뒤에 느껴지는 누군가의 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이게..뭐... 멀린?"


분명 어제 밤 바에서 만났고... 집으로 어떻게 들어온 기억이 없는거 봐선 멀린이 데려다 준 것이 분명한데. 잠깐만 나 왜 알몸이냐. 아니, 멀린은 왜 알몸이야. 애초에 왜 한 침대 인건데!
소리도 못내고 반쯤 벌린입을 어버버 하고 있으니 안경도 쓰지 않은 어딘가 낯선 그가 살며시 눈을 떠 저를 본다.


"아...저... 그.... 굿모닝."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인사에 멀린은 계속 저를 바라만 보고 있다가 '피식'소리를 내고 웃으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잘잤니."
"네? 네... 뭐. 아마도? 그럴걸요?"
"... 그래. 못일어 날거라고 생각했는데."
"저요? 제가요? 왜요? 내가 왜?"


그의 말에 의구심을 가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에그시는 허리뒤쪽으로 느껴지는 뻐근한 감각과 아래를 쑤시는 듯한 통증에 완전히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침대위로 '풀썩'소리를 내며 쓰러져 '으으으'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시발 내가 지금 여기가 왜 아픈건데.


"조금 더 자두는게 좋을거다."
"하....아으... 멀린."
"...."
"대답해요."
"뭐, 인마."
"술취한 오메가 따먹는거 너무 파렴치 하다고 생각 안해요?"


그에게서 등을 돌려 몸을 말고 고통에 침대보를 쥐어 뜯으며 화가난듯 목소리를 내니 등뒤에서 바스락 거리며 그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말은 바로해야지."
"...."
"난 가겠다고 했고 니가 날 잡은거야."
"그래도!! 내가 술취한거 알고 술주정이었으면! 거절했어야지! 아!! 아으..."


강제로 돌려눕혀지자 허리의 통증이 다시금 밀려왔다. 통증이 가라앉을 쯤 눈을 떠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게 안경이 없기 때문인지 조금 처진듯한 눈썹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 그래. 미안하다."
".... 멀린?"
"나도 알지. 술주정하고 있는거 뻔히 아는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그런다는 걸 아는데."
"....내가... 그랬어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가 괜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제 옆의 침대를 짚고 버티고 선 그의 팔을 가볍게 쓸었다.


"그래도 마음에 없으면 거절했어야죠."
".... 마음에 없지 않았으니까."
"...네????"


잔뜩 일그러진 눈을 하고 뭔 소리냐는 듯 저를 돌아보는 그의 표정이 재밌어 '피식'대고 웃으니 그는 다시 팔꿈치로 몸을 버티고 반쯤 몸을 일으킨다.


"뭐라구요? 지금 뭐라고..."
"누워 있어. 수건 데워올테니까."


알몸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선 - 의외로 잘빠진 몸매의 - 그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지금 그러니까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한거야?


-


식탁위에 차려진 간단한 아침식사. 가운을 입고 따뜻한 차를 손에 쥐고있는 저와 뭘 하는건지 멀쩡하게 차려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찬장을 열었다가, 냉장고를 열었다가, 협탁서랍을 열었다가...


"뭐 찾아요?"
"잼."
"여기 꺼내놨잖아요."
"땅콩버터. 넌 그거 좋아하잖아."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런 이야기를 내가 한적이 있었나.
.... 해리는 건강에 안좋다고 못먹게 했는데.


"냉장고 위쪽의 찬장에 있어요."


구부려졌던 허리를 편 그가 냉장고위의 닫혀진 찬장을 보더니 저를 흘기며 짧은 한숨을 쉬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연다. 반도 안먹은 땅콩버터가 테이블, 그것도 제 앞으로 놓였다.


"이건 왜 저 위에 놔둔거야?"
"... 해리는 못먹게 했거든요."


맞은편에 앉아 잔소리를 하던 그가 떠올랐다.


   '건강에 안좋으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한정하자.'
   '왜요! 아, 나 이거 없으면 못사는데!'
   '살찐 몸으로 정예요원을 할 수는 없지.'
   '나 살찌면 미워할 거예요?'
   '... 글쎄. 손에 잡히는 맛은 있겠구나. 너 같은 체질이라면 가슴도 꽤 커질 것 같고...'
   '아 됐어요!! 안 먹어!!!'



그리고 나선 그는 잘됐다는 듯 뚜껑을 닫아서는 의자를 밟지 않는이상 손이 닿지 않는 냉장고 위의 찬장으로 잼통을 올려버렸지. 그리고선 한달에 한번 기분이 우울해질때면 그는 마치 약을 처방하는 것 처럼 그것을 듬뿍 떠서 제 빵에 발라줬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길게 뻗은 손이 그것을 집어다 찬장위로 올려버린다.


"아, 줬다 뺐는게 어딨어요!! 빨랑 줘요!"
"살찐 몸으로 정예요원을 할 수는 없지."


토시하나 틀리지 않는 정확한 그의 문장이 멀린의 입에서 똑같이 반복됐다. 놀란 마음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는 피식 웃으며 손끝으로 벌어진 제 턱밑을 위로 밀어올리며 입을 다물게 했다.


"한달에 한번 정도로 할까?"
"....멀린."
"아마, 해리라면 그렇게 했겠지."


당신이 나를 알고 있는건지 해리를 알고 있는건지 헷갈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위해 이러고 있는건지 당신 스스로도 누군가 추억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건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이거겠구나."


냉장고에서 그의 손에 의해 으깬 완두콩이 잡혀나왔다.


"콩 싫은데."
"알아. 다만..."
"해리도 먹이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다 실패했어요."
"... 그래? 그럼 이건 왜 사다 놓았니? 먹지도 않으면서."


있어도 안 먹으려고.



-



"여기는 알파. 현장 클리어."
[수고했다, 에그시. 바로 A6존으로 이동하여 준비된 헬기를 타고 복귀하도록.]
"멀린. 자꾸 통신에다 대고 이름으로 얘기할거예요?"
[....... 수고했다. 갤러해드.]
"카피."


무전기를 갈무리해서 어깨끈에 장착해 넣으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록시가 저를 보고 팔짱을 끼며 긴 한숨을 내쉰다.


"뭐. 말할거 있으면 빨리해."
"멀린 왜저러는지 설명해주실 분 여기 없을까?"
".... 일단 가자."


장비를 정리하고 헬맷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며 건물을 나섰다.


"야. 에그시."
"아 왜!"
"너 이번엔 뭔데."
"야."
"너 이런식이면 내가 너 오해한다."
"...."
"왜 자꾸 코드명으로 안부르는데?"
".... 해리 이름이었잖아."
"그래서."
"내가 자꾸 떠올려 하니까 힘들어 보여서 그런것 같은데."
"다른 의미는 없고."


옆에서서 부지런히 이동하는 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있어."
"뭔데."
"멀린이 나 좋아한대."
".... 하..."
"아니 뭐 나더러 어떡하라고. 난 아무것도 안했어."
"우리 들어올때 위에서 그렇게 반대 했다는거 알고 있었냐?"
"테스트 다 통과 하면 들어오는건데 반대는 뭘 반대를 해?"
"오메가잖아."
".... 야, 너 무슨말 하려는지 알겠는데 해리때는 내가 먼저 반한거고..."
"아무튼간에!"
"내가 일에 차질 안생기게 하잖아! 뭐 어쩌라고!!"


소리를 한번 지른뒤에 그녀는 헬기에 오르기 전까지 한마디 말도 덧붙히지 않았다.
얘랑 싸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지 모를일이다.


"록시."
"부르지마."
"야."
"멀린이랑 사귀던지 시발 나랑 알게 뭐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떻게 너같이 유리멘탈인 놈이 요원이 되서는."
"니가 최우등생이었던 거지 그 다음은 나였어."
"개도 못쏘는 놈이."
"키우던 개를 어떻게 쏴!"
"만일 멀린이 배신하거나 내가 배신하면 쏠 수 있어?!!"
".... 너가 왜. 멀린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넌 왜 그렇게 정을 못붙혀서 안달이냐? 왜 그렇게 한시라도 정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건데!"


그러게.
난 왜 그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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