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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에드워드] 친애하는 국왕폐하

리퀘박스 12 180421 리퀘 [버티에드워드] 친애하는 국왕폐하



친애하는 국왕폐하. 






그날은 평소보다 총성이 덜했다. 양측에선 서로의 포로가 인질이 되어 대공사격도 대형무기들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간혹 적진 혹은 아군의 얕은 방호벽을 뚫으려는 간헐적 시도들에 의해 한두명의 희생자와 여러명의 피해자, 더불어 일어나는 총성이 전부였다. 남은건 포로교환과 전장수습이겠지만 네땅도 내땅도 아닌 곳에서 그들과 우리는 이념에 의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우리는 이곳에 흘려진 수많은 아군의 피로 더이상 물러설 생각도 방법도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달도뜨지 않은 어두운 시각 작은 불빛앞에 자리잡아 펜을 든 나는 불빛에 뒤척이며 고개를 돌리거나 악몽을 꾸는 전우들을 살폈다. 펼쳐진 종이위로 어쩐지 펜끝이 내리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무슨말이 하고 싶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전쟁이 끝나면 나는 그의 곁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 이 전쟁이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


"또 써?"
"어?....아, 응. 다른사람이야."
"누군데? 어제는 누나한테 쓴거라더니."
"있어."
"애인? 애인있다고 했었나?"


눈살을 지뿌리며 골똘이 생각에 빠지는 친구녀석의 몸을 가볍게 밀었다. 친구... 우리는 친구 일까. 서로의 나이와 고향, 이름을 아는게 전부다.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들은 오래전 우리의 관심을 벗어났다. 틈이 나면 우린 '고향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쟁중인 이곳과 달리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궁금했다.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안전한지도...
겨우 펜 끝이 종이위로 내려앉는다.




────── * ──────

친애하는 국왕폐하.
지난 라디오 음성에서 남겨주신 전선을 독려하는 목소리가 반가워 듣고 또 들었습니다. 몇몇 동료들은 저와 함께 듣기도 했고 그중 일부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전 그저 폐하의 음성을 듣는것이 좋아 아무것도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음성이 폐하에게 닿지 못한것이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가끔 아이같다 하시고, 새된소리를 낸다고 하셨는데 이러다 폐하께서 제 음성을 잊을까 염려되어 편지의 끄트머리에 추신을 작게 속삭여보았습니다. 폐하께 제 음성이 닿았을까요?

오늘은 평소보다 총성이 드물었습니다. 하루종일 귀를 울리는 대포소리도 대공포 소리도 없이 전우들과 고향이야기를 했습니다. 매일 같이 했던 이야기인데도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차로 목을 축이며 이야기를 주고 받으니 마치 폐하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고 따듯한 마음이 되어 즐거웠습니다. 다만 아쉬운점은 그 향기의 끝에 들려오는 폐하의 음성과 맑은 눈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이 향기의 끝에 폐하께선 정무를 이야기 하신 적도 있고 자연을 이야기 하신적도 있습니다. 곱씹어 보건데 우리의 대화엔 단 한번도 전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우린 평화롭게 또 여유롭게 차를 나누며 이야기 했었죠.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꿈만 같아 아련하게 기억속에서 흐려지고 있습니다.

계시는 곳은 따듯하신지, 불편하신점은 없는지 걱정스럽습니다. 국민에게 힘이 되고자 버킹엄궁에 계신다 들었지만 저는 폐하께서 좀더 자신을 보살피시길 간절히 바라고 또 원합니다. 적군에게 있어 우리 영국의 버킹엄군은 언제나 표적의 대상이고 언제든 포탄이 떨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폐하를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제 마음을 헤아리시어 부디 안전하게 계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옥체보전하시고 평화를 맞이하는 그날 맑은 얼굴로 폐하의 앞에 서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날은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저에겐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같을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 p.s. 아침엔 잊지말고 사과를 드세요.

전선의 끄트머리에서
E.B

────── * ──────




'아침엔 잊지 말고 사과를 드세요.'
'그게 무슨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폐하께 마음을 전달 할 수 없으니 암어를 만들어야 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인데.'
'.... 사랑한다구요.'
'....'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이의 손을 거쳐 자신에게 전달된 한장의 편지지는 몇번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끄트머리가 구겨져 있었다. 이런 정갈한 필체를 구사하는 그라면 곱게 접어 구김없이 봉투에 넣었을 것이다. 그 첫모습이 보고 싶었다. 많은 이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전달되는 고운 편지 한장이 그리웠다. 국왕에게 전달되는 편지임에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검열을 거쳐 도착하는 것이 아닌 네 손에서 나의 손으로, 네 입에서 나의 귓가로 전달되는 그 짧은 간격이 그리웠다.


"서플랑드르의 격전지 소식은 따로 없나."
"양측에 상당수의 포로들이 잡혀있어서 공격이 둔화되었습니다. 평화적인 합의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히틀러가 그렇게 할까."
"...."


왕실 비서는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도 나도 그 미치광이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음에도 그는 미친말처럼 날뛰며 전장의 이곳저곳을 들 쑤셨다. 어쩌면 아군이 다 죽는 자살작전을 펼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소중한 이의 목소리를 영영 다시 못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심장이 끊어질듯 조여왔다.


"괜찮으십니까?"


그저 눈을 감고 긴 숨을 뱉었을 뿐인데 귀신같이 기척을 알아차린 그가 가까이 다가와 물한잔을 내민다. 전장은 어떠할까. 나를 걱정하는 그에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깨끗한 물 한잔이 주어질까.



────── * ──────

친애하는 에드워드.
네 마음이 담긴 소중한 편지는 잘 보았다. 글자 하나하나 속에 담은 그리는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이 그대로 닿아 나 역시 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왕으로써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자리를 지킬 용기를 얻었다.

총성이 덜하다니 그보다 기쁜 소식이 없구나. 그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을 이가 비단 우리 뿐이겠느냐. 그곳에 있고 이곳에 남겨진 수많은 목숨과 그 가족들이 모두 기뻐하는 그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단 하나의 상처도 없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곱고 고운 모습으로 나에게 돌아오길 매순간 기다리고 또 그것을 위해 난 한시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구나.
내 곁에 남았던 너의 체취는 조금씩 흐려져 사라져가고 있다. 다시금 그 향기를 맡을날이 온다면 다시는 너를 놓지 않으리라 내 곁에서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매일 하루 같이 전장으로 젊은이들을 보내야만 했던 선택을 후회하고 너의 마지막 인사에 작은 손인사 하나 보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버킹검의 정원에는 꽃망울이 일어나고 있단다. 작년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꽃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네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구나. 부디 꽃이 지기 전에 돌아와 함께 맑은날을 거닐고 싶구나. 그런날이 온다면 나는 너에게 한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려고 한다. 너의 입술을 통해 수없이 전달된 그 말이 오늘은 내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침엔 잊지말고 사과를 먹거라.


전장을 향한 창가에서
Ber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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