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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에그시] 꽃집아저씨

리퀘박스 06 180224리퀘 [해리에그시] 꽃집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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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아저씨
총9,460자


20세기초 au.
시점 자유로움 주의.





[언윈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

꽃다발 포장을 위해 조간신문을 정리하는중 기사제목 한줄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파벌싸움이 끝난 모양이지. 새로운 후계자가.... 에그시 언윈? 허. 아직 애 아냐? 몇년전 케이터링을 하러 백작집에 들어갔던 날 저보다 조금은 어린 부부에 내 아들뻘은 되어보이는 그집 자녀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던게 어제일 같은데. 아직 소년의 얼굴이었던 그를 보고 허리숙여 인사올렸었지만 그는 뭔가 다른일에 열중하며 제 인사따윈 받지도 않았었다. 지금은 좀 자란건가? 얼굴이라도 볼까 싶었지만 신문기사엔 그에 대한 사진은 단 한장도 실리지 않았다. 적당한 권력을 갖기전까진 그 앳된 얼굴을 보여 좋을건 없겠지. 실제론 몇살일까? 20살? 22살?

[지난 새벽, 리 에드워드 언윈의 장남 에그시 언윈이 차기 언윈 가문의 후계자로 밝혀져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몇년전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그동안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된 훈육을 마친 그의 형질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항간엔 베타인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베타라. 권력을 가지려면 알파인편이 나은데... 하긴 오메가 보다야 베타가 더 나을 수도 있겠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사람이 알파든 오메가든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의미없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신문구석의 오늘 날짜가 보인다. 12월18일... 아, 리 언윈 기일이 내일이네.

흰꽃을 많이 준비해놔야겠다.



-



예정대로 신문엔 단편적인 기사만 실렸지만 주변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부모님의 묘소앞에서도 저를 채근하고 추궁하는 다른어른들에게 최대한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계자 계승에서 밀리거나 오메가로 밝혀지면 이전 주인님께서 물려주신 많은 것들을 한번에 잃게되는겁니다.'

어울리지 않는자리에 버티고 선것은 그나마 저를 위한, 제 부모보다 더 나이가 있는 고령의 집사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길 그 누구하나 밝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 시장의 옆길을 지났다. 추워진 날씨에 마음도 얼어붙었는지 회색빛이 물든 거리에 다른 어떤 상점들에 비해 전혀 다른 빛으로 빛나는 한 집이 보였다. 온통 흰 꽃 때문이었을까. 손을들아 마차를 세우고 시종에 의해 열린 문으로 내려선 에그시는 흰꽃으로 둘러싸인 작은 꽃집앞에 섰다. 해가지며 어둑해지는 시각, 노란 전구로 불빛을 밝힌 실내엔 수천송이의 하얀 꽃들을 진열하는 한남자가 있었다.


"주인님."


옆에 선 집사가 에그시를 불렀지만 그는 조용히 하라는듯 왼손을 잠시 들었다 내렸다.
꽃집의 유리문과 색바랜 나무가 마치 액자의 틀처럼 느껴진다. 움직이는 그림속의 그 남자는 무슨 좋은일이 있는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건지 가만히 미소지으며 크고작은 꽃들을 정리한다. 그의 검은바지는 약간의 흙먼지가 묻어있었고 하얀셔츠의 소매는 팔꿈치 까지 걷어올라가 있다. 곱게 빗어넘긴듯 하지만 곱슬거리는 머릿결이 그가 움직일때마다 찰랑이다 가끔 그의 눈가를 간질었다. 어째서 이 가게의 꽃은 거의 다 하얀 꽃일까.


"꽃을 사시겠습니까."


집사의 말에 에그시는 잠시 시선을 돌려 자신이 타고 있던 검은 마차를 바라봤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검은색만 칠해진 자신의 마차가 마치 상여처럼 느껴진다. 묘소를 다녀왔으니 상여가 맞을까.


"네. 조금... 사야겠습니다."
"마차에 오르시면 소인이 주문해오겠습니다."


집사의 말에 에그시는 다시 꽃집을 바라봤다. 현관을 등지고 카운터에 팔꿈치를 기대고 자세를 숙인 그의 뒷모습에 가슴속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적어내려가던 그는 살짝 몸을 비틀더니 한손으로 허리를 짚고 안쪽에 따로 마련된 붉은 장미꽃을 보며 좀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저 꽃을 선물할 사람이 있는걸까. 그사람을 떠올리며 저렇게 미소 짓는 걸까. 별 생각이 다 든다. 고작 오늘 처음본 사람에게.

몸을 돌려 다시 마차안으로 올랐다. 마차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꽃집을 다시 바라보니 귀족으로 보이는 정갈한 차림의 남성이 답지 않게 빠른걸음으로 꽃집으로 들어갔다. 꽃집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고 몇마디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조금전 그가 바라본 붉은 장미꽃을 내민다. 꽃의 주인공은 저 사람이었을까? 잠시 눈살이 찌푸렸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 귀족남자는 주머니에서 화폐 묶음을꺼내 꽃집주인에게 통째로 내밀었다. 꽃의 가격이 그만큼이 아니었는지 둘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고 남자는 서둘러 꽃집을 박차고 나왔다. 덩달아 따라나온 그를 보며 에그시는 저도 모르게 창문뒤로 몸을 숨겼다.


"아, 거참. 저러고 프로포즈 실패하면 어쩔거야."


그의 목소리는 상상했던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보다 조금더 무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른것에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알프레도."


뭐지? 집사를 알아?


"그래요. 해리. 잘 지냈나요?"
"네. 뭐 덕분에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일로..."
"지나가던 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꽃을 좀 살까 하는데."


커튼사이로 바라본 그는 마차를 힐끔 보고는 다시 알프레도에게 시선을 맞췄다.


"네. 얼마나요?"
"...."


알프레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커튼사이로 살짝 바라보니 그가 귀신같이 자신이 있는 곳을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흰꽃을 많이 사두셨군요."
"네. 필요할 것 같아서..."
"전부다 주시죠."
"...네?"


놀란것은 해리뿐만이 아니었다. 완전히 모습을 숨기고 자리에 앉은 에그시역시 그의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다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시겠지만..."
"....네. 오늘이시죠."


저 사람은 어쩐지 제 부모의 기일까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우리집안과 오랫동안 거래를 했던 집이라는 건가. 그럼 우리집에도 한번 왔을텐데 왜 처음 본 것 같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떠오르지 않는것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 지었다. 저택에 플라위리스트가 왔다고 거들떠 보는 사람은 아니지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미소짓는 사이 노크소리가 들리고는 문이 살짝 열리며 하얀 꽃이 불쑥 들어온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노란꽃술을 가진 하얀꽃이 저를 바라보고 살랑인다. 이 날씨에 어떻게 이런 꽃을 피웠을까. 대답없이 내밀어진 꽃을 받아들자 문밖의 그가 다시 조심히 문을 닫는다. 나 설마 위로받은거야? 이런데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괜히 웃음이 났다. 얼마만에 웃는건지 헤아려지지 않는다.


'똑똑'
"네."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출발하는 마차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어 다시 밖을 바라봤다. 멀어지는 꽃집의 그 주인은 가계앞에 진열된 꽃가지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



일단 급하게 시종의 옷을 빌려 입었다. 어디에 쓰냐는 질문따윈 없었지만 혹시나 집사가 뒤를 캘까 싶어 입단속을 시켰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을것이다. 시장에 들어서 옷가게 쇼윈도에 비쳐보이는 제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청년이다. 백작가문의 후계자도 뭣도 아닌. 여기서 3집만 더 지나면 꽃집인데 왜이렇게 손에 땀이 나는지 모를노릇이다. 조금 떨어진 꽃집앞엔 흰 꽃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눈부시게 빛나던 꽃은 전부 자신의 것이었나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처음 집사가 그런말을 했을때는 사실 충격이었다. 원하는 것을 갖지못했던 적도 없거니와 그럴 수 있으리란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일때는 더 힘든 법이겠지. 꼭 쥐어진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 밝은 햇살때문에 가게 안쪽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만 열면 된다. 문만 열면 다시 그 남자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문만열면...


'딸랑'

"꽃 사시게요?"
"딸꾹."


대답대신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그런 내가 웃겼을까. 그는 저를 가만히 바라보다 살짝 시선을 내려 제 차림새를 보고는 싱긋 미소짓는다.


"들어오세요."
"...네."


그가 열어준 문넘어의 그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터질것 같다. 꽃향기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에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


평일오전인 탓인지, 항구에 배가들지 않는 날인 탓인지 가게앞은 한산했고 가게역시 오늘 단 한차례도 손님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뜬 점심 무렵이 되자 가게앞을 서성이는 누군가. 그냥 문을 열면 될것 같은데 잘 보이지도 않을 실내를 기웃거리고 심호흡을 한다. 꽃을 처음 사는걸까, 아니면 없는 살림에 무리하는걸까....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 그는 백작의 아들이었다. 소년의 테를 거의 벗은. 아마 20대 중반의 나이는 되어보였다. 이젠 백작아들이 아닌 백작 그 자신. 그 옅은 올리브색 눈빛을 못알아 볼리가 없지. 귀족답지 않은 차림새를 했지만 때하나 묻지 않은 하얀 피부와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손끝의 굳은살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평민으로 위장을 하고 꽃집을 찾은셈이군. 문을열고 인사를 하니 딸꾹질 부터 튀어나오는 제법 귀여웠다. 비밀스러운 사랑이라도 하고 있는건가.


"들어오세요."
"...네."


그렇다면 일단 모른척 해줘야지.


-


연륜이 느껴지는 그의 손끝이 꽃다발을 야무지게 엮는다. 꽃가지를 다듬는 소리,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뭔가 열중한듯 간간히 힘을주는 듯한 그의 작은 숨소리. 뒤로숨긴 손이 떨려 가볍게 마주잡았다. 주어진 일을 하느라 내리뜬 눈꺼풀위로 그림같은 속눈썹이 까딱인다.


"여기요."
"...."
"....저기..."
"네?"
"꽃다발이요."


제 앞으로 내밀어진 꽃다발을 보다 '아!'하는 탄성과 함께 덥썩 잡아쥐다 그의 손이 스쳤다. 따듯해. 꽃을 다루려면 조금 차가운손이 좋다고 들었는데...


"2실링입니다."


그의 말에 한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급하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집에있는 동전을 아무거나 긁어왔는데 이중 맞는단위가 있겠지 싶어 내미는데 그가 볼에 바람을 넣고 '후'하는 소리를 내며 살짝 고개를 젓는다. 너무 적은가?


"파운드는 너무 큰데... 거스름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잔돈은 없으세요?"
"...아, 그래요? 그럼...저..."


주머니에서 딸랑거리던 동전을 다시 내밀었다. 제 손바닥에 놓인 동전을 가만히 보던 그는 다시 저를 빤히 바라본다. 미소도없이.... 이건 너무 적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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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단위를 모르는건가. 딱봐도 금색에 조금전의 동전들보다 더 무거울텐데. 돈에 대해 아예 감각이 없다는건 이런거구나. 이런 사람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변장을 하고 그 가치를 알지도 못하는 동전들을 내밀었다는것에 웃음이 났다.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하나보네. 그냥 시종을 시켜도 될일을.


"저... 너무 적은가요?"
"아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전에 주신 것들보다 크네요. 아주 조금."


청천벽력이라도 맞은듯 표정이 무너진다. 아니 뭐 또 그게 그렇게 슬퍼할일은 아니잖아. 일단 내밀어진 손에서 그나마 작은 단위인 파운드를 집어들고 그의 손을 다시 곱게 접어줬다. 이 많은돈 한번에 잃어버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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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그냥 스친정도가 아니다. 펼쳐진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들을 두손으로 이리저리 만지다 그중 하나를 집고는 제 손을 동그랗게 말아줬다. 심장이 터질것 같다. 앞으로 꽃을살때마다 돈을 이렇게 내밀어야지. 그러면 또 손바닥 사이를 간지르다 그중 하나를 집어가겠지.


"이거 걸어두시면 다음에 오실때마다 차감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자주 오실거죠?"
"네!.....아니...그러니까..."


자주올거냐는 말에 일단 신나게 대답했는데 곱씹어보니 저 돈을 걸어둔다고? 그러면 그 다음부턴 돈을 안받겠다는건가? 어쩌지. 그럼 다시 손이 스칠일이 없는데....


"많이 좋아하나보다."
"...네?"


설마 들킨걸까? 그래 내 행동이 이상했어. 갑자기 씩씩하게 대답을 해대질 않나. 지금도 경직된 몸을 풀지도 못하고 있잖아.


"누군진 몰라도 그 꽃다발 받는 분이 부럽네요."


선반위의 금고를 열어 동전을 넣은 그는 한쪽에 놓인 공책의 새로운 면을 폈다. 아 들킨건 아니네...


"그러니까... 성함이..."


내 이름을 왜 묻지? 설마 조금이라도 나에게 관심이...


"잔돈 차감해드리려면 기록해놔야죠."


그럼 그렇지.
잠시 한숨을 내쉬며 딴짓을 하고 있으니 그가 저를 보며 눈썹을 들어올린다. 아, 이름. 이름. 이름.... 뭐라고 하지 뭐...  때마침 손목에 시종의 이름이 보였다. 평소 옷에다가 표식을 해두는 모양이네.


"에드워드 브리튼이요."
"네, 브리튼씨."


살짝 미소짓고는 이름을 써내려가는데 그의 노트를 보니 내 이름옆에 1파운드라는 글이 쓰인다. 그러니까 그게 파운드 였구나. 근데 그게 그렇게 큰돈인가?



-



"큰돈이죠."
"얼마나요?"
"1파운드는 20실링입니다. 1실링은 서민들의 1끼 식사값 정도예요."
"... 그런계산이라면 20끼 식사값인데 그게 큰돈입니까?"
"그 돈이 없어서 굶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집사의 말에 괜히 멋쩍어 눈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가볍게 입을 적셨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음?"
"회계에도 관심을 기울이시려구요?"
"아...네.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도 관심을 가져야 하니까."
"네, 그럼 관련 교사를 붙혀드리죠."


그렇게 과하게 원한건 아닌데... 억지로 미소를 띄며 시선을 피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네?"
"주인님께서 자리를 잡기 전까진 베타로 있으셔야 합니다. 어디에 알려져서도 안되구요."
"네. 항상 하는 말씀이지 않으십니까."
"때문에 외부 활동은 자제하는편이 좋겠습니다."
"어째서요."
"혼기를 맞은 오메가는 적당한 알파를 만났을때 각인이 되기 쉽상입니다."
"각인.... 이요..."
"네."


설마 그게 각인이었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그냥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각인...이라고?


"그... 각인이란게 되면 보통 반응이 어떱니까?"
"시도때도 없이 상대가 생각난다거나 목소리가 듣고 싶거나 몸이 스치고 싶고 만일 히트사이클이 오면 그 사람만 떠올리게 됩니다. 아직 주인님께선 마땅한 알파를 만난적이 없으시니 각인되신 바는 없으시겠죠."
"아...네. 그럴겁니다."
"혹시... 있으십니까?"


이 귀신....


"아니요. 없을겁니다. 그렇게까지.. 떠오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



집사의 말대로라면 각인이 확실했다. 자기전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르고 매일 조금씩 미세하게 다른 꽃향기가 느껴진다. 몰래 사온꽃이 침대아래에서 은은한 향기를 피우고 있음은 물론이고.
각인이라.... 그럼 그사람이 알파라는건가.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지? 물어봐도 되는건가?

혼란스러움에빠져 그저 발이 이끄는대로 한참을 걷다보니 꽃집앞이다. 오늘은 날이흐려 실내에 불이켜져 있었고 불밝힌 꽃집안엔 작은 화분을 차례로 진열하는 그가 보였다. 무슨이야기를 어떻게 꺼내나....


'딸랑'


종소리가 울리자 환하게 웃는 그가 돌아본다. 이렇게 보는건 또 처음이구나.


"오셨네요."
"네. 저기..."
"찾으시는게 있으세요?"


가까이 다가와 서며 저를 살짝 내려다보며 미소짓는다. 저기 미안한데 그러지말아줄래요. 심장이 멎어버릴것 같거든요.
그 시건을 피해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 아무거나 보이는 꽃다발 하나를 덥썩 집어 내밀었다.


"이거요!"


>>


계산을 하겠다는건지 당신에게 주고싶다는건지 모를 정도로 제 앞으로 당차게 내밀어진 연 보라빛의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전에도 이 비슷한 색으로 하셨던것 같은데 그분이 핑크계열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꽃 받으시는분이요."
"아, 네. 뭐...음..."
"아니면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거?"


꽃다발을 종이에 가볍게 포장하여 그에게 내미니 그는 또 역시 떨리는 두손을 들어 곱게 받아간다. 좀 과하게 손이 겹치며 스쳤던것 같지만 그런건 별로 게의치 않았다.


"이것도 기존에 내셨던 금액에서 차감할게요."
"네."


공책을 뒤져 그의 이름을 찾도록 그는 제 앞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를 내며 꽃다발을 어쩌질 못하고 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저,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고백의말을 말하는건가? 그래 그런 고민이라면 받아줘야지.


>>


잠시 동그래졌던 눈이 기분좋게 휘어지더니 보조개가 푹 패이며 미소를 짓는다. 심장이 멎는것 같아.


"그냥 궁금한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네?"
"혹시... 어... 형질이 있으신분이신가요?"
"....네????"
"아니 그러니까. 어... 알파나 오메가나... 아니면 형질이 없는 베타이시거나... 그러니까... 아니요 왠지 그냥 궁금해서요. 어 편견 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꽃집을 운영하시는 분이 남자 사장분 이시고...."
"아, 상담이 필요한거죠?"
"...네 뭐 그런...거죠."
"안타깝게도 알파예요."


역시그랬어!!!
그럼 각인된건가? 아니 잠깐, 근데 그게 왜 안타까울일이지?
눈을동그랗게 뜨고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며 살짝 고개를 틀자 그가 '아!' 하는 짧은 탄성을 내더니 다시 미소짓는다. 약간 미안하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꽃을 자주 구매하시길래 당연히 알파일줄 알았어요."
"... 알파들만 꽃을 사나요?"
"그렇진 않죠. 베타나 오메가도 오는데... 젊은 남성이 혼자 와서 꽃다발을 살땐 알파인 경우가 많아서요. 베타이셨구나."
"젊은 남성 오메가는 꽃을 안사나요?"
"............ 아니요. 어.... 보통은... 꽃을 주로 받는... 편이니까..."



>>



당황스러움에 말이 끊겨서 나갔다. 거기서 백작의 후계자로 뽑힌 당신이 오메가일리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설마 오메가라는 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평민으로 분장해서 꽃을 사러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혼기가 찼으니 적당한 알파를 찾아서...


"혹시 각인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네. 간혹 있는 일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사랑일까 궁금해서요. 만얄 형질이 있으신 분이면 그... 한번 상담해보고 싶었어요."
"...글쎄요."
"그냥 아무이유 없이 각인되는거면 사실 사랑은 아니겠죠?"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꽃다발을 든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가 다발을 감싼 종이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죠."
"네."
"그 순간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어요."
"...."
"그런데 보통 그 첫눈에 반한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죠."


제 두눈을 번갈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사랑은 감정이고, 감정이란건 쌓아가는거니까. 각인된 순간이 사랑이 아닐 순 있지만 그걸 사랑으로 만드는건 당사자에게 달린일이겠죠."


원하는 답을 얻은건지 눈앞의 청년의 표정이 환해진다. 그리곤 뭔가를 다짐했는지 눈을 질끈 감고 침을 삼키더니 순식간에 미소짓는 얼굴을 보인다. 어떤 사랑이든 용기를 내라고 말하려는 찰나 눈앞이 어둑해지며 입술에 낯선감촉이 닿았다 떨어졌다.
지금.... 그러니까 지금..... 입술에 그러니까...


"말씀하신대로 감정은 쌓아가는 거니까요."
"....네?"


질문을 다 마치기도 전 다시 한번 입술이 다가오더니 조금전과는 다르게 제 입술을 가볍게 머금고 떨어졌다. 이게 무슨일이야...


"내일 또 올게요."


멍하니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사이 꽃다발을 들고 신이난듯 가게 문을 열고 나간다. 쇼윈도의 오른쪽으로 신나게 걸어가던 그가 다시 잰걸음으로 달려와서는 문을 연다.


"근데 이건 얼마였어요?"
"......그....2실링이요."
"다 2실링이네. 저, 1파운드 짜리는 없어요?"


그의 말에 굳어진 자세를 살짝 틀며 한쪽 구석에 놓인 커다란 꽃바구니를 살짝 가르켰다. 그러더니 그는 불쑥 다시 들어와서는 그걸 번쩍 집어들고 다시 나간다.

"....브리튼씨?"
"네."
"어... 기존거에서 제하면 4실링이 모자른데..."


싱긋 웃더니 대답없이 사라진다.
내일 또 온다니까 그때 받으면 되는건가. 그러니까 외상...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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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어서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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