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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에그시] 어떤작가

리퀘박스 05 180217 [해리에그시] 어떤작가


총 4,830 자




19세기말 au.




'어둠보다 별빛이 더 많은, 낮과같은 그 밤하늘이 나의 머리위를 수 놓았다. 언젠가부터 혼자인것이 익숙한 나는 이순간 애타게 곁을 지킬사람을 찾는다. 어디 나와 함께 밤하늘에 놓인 푸른 강물을 노래할 사람이 없느냐고. 수많은 별빛들의 향연아래 눈을 감으며 난 어둠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구겨진 종이위로 거칠게 갈겨진 그의 필체가 밤하늘을 그렸다. 그것도 혼자인 밤하늘. 제가 보기엔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이 글귀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잔뜩 구겨져 거실을 어지럽혔다. 손에 든 빗자루를 나무테이블에 기대어 놓으며 에그시는 바닥에 뿌려진 종이조각들을 집어다 다시 하나하나 가지런히 폈다.


"뗄감으로 쓰려고?"


등뒤에서 시큰둥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그시는 '피식'소리를 내고 웃으며 그를향해 돌아섰다.


"이게 얼마짜린줄 알고 뗄감으로 써요."
"...."
"그래서, 이 주인공은 왜 혼자였는데요?"


조금전 읽던 글을 곱게펴 그의 앞에 내밀자 그는 '탁'소리가 나게 뺏고는 여러번접어 벽난로위로 올려둔다.


"인간은 모두 혼자였으니까."
"해리."
"...응."
"그럼 당신과 나도 따지고 보면 혼자 인가요."
"그렇지. 우린 각자의 목숨을 살고 있으니까. 다만 인생이라는 긴 시간의 일부를 공유하는거지."
"시간이 공유된 사이는 그 시간동안 '함께'인거잖아요."
"....왜?"
"응?"
"그걸 왜 묻는데?"


에그시는 그의 허리를 잡고 품에 안기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이 힘들어 하는것 같아서."
"... 글쓰는거 그만둘까 하고있었다."


고개를 번쩍 떼며 다시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만두다니 왜요!"
"재능이 없는것 같아서."
"무슨말이예요. 내가 당신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가 하나뿐인 글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건..."
"해리."
"...."
"언젠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진가를 알아보게 될거예요."
"에그시."
"네."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에그시는 그저 미소지으며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쓸었다.


"어느날 갑자기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것보단 나아요."
"이젠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해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에 가볍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럼 우리이야기를 써보는건 어때요?"
"우리 이야기?"
"네."
"..... 글쎄."



-



아침해가 떠오르기전 하늘에 여명이 푸르게 물들때쯤 천천히 잠에서 깬 해리는 몇번 눈을 깜빡거리다 제 옆에 저를향해 누운 청년을 바라봤다. 어느덧 소년의 티를 다 벗어낸 청년은 여전히 하얗고 말간 모습을 하고 제 옆에 그림처럼 누워 저를향해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다. 처음 만나던 날 솜털이 살아있던 하얀 손끝에 물들었던 핑크빛이 언제쯤 사라져 버린건지 그의 손끝은 회색빛으로 하얗게 텄다. 그날 프로포즈를 하던 나는 물을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했었던가. 아니면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했었던가. 그날의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너에게 그런 지키지도 못할 프로포즈를 했었던가. 티내려 하진 않았지만 절로 새어나오는 긴 한숨에 아이의 눈이 천천히 뜨이며 저를 향한다.


"깼어요."


목이 많이 잠긴 그의 목소리는 바람소리가 섞여있었다. 어젯밤 나는 또 무엇으로 너를 유혹해 감히 품에 안았을까.


"에그시."
"응."


다시 눈을 감은 그는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제 품속으로 쏙 들어와 안긴다.


"그러면 어떨까."
"뭐가요?"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깊은 잠이 묻어있었다. 아마 저가 무슨말을 하더라도 그는 그냥 알겠으니 그러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귀족가문의 집사인거야."
"응..."
"그리고 너는 그 집안의 하나뿐인 소중한 도련님인거지."
"...내가요?"
"그 집사는 거의 그 도련님을 키우다 시피했지. 아주 어렸을때부터 함께지냈을거야. 아주 어릴땐 스승이기도 했고 심부름꾼 이기도 했고. 집사는 도련님이 아주 아름답고 훌륭하다 생각했지만 다른 마음을 키우지 않았어."
"....."
"그런데 도련님은 언젠가부터 집사를 마음에 품게 된거지. 자신이 보는 타인은 몇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집사의 용모가 훌륭하니까?"


잘 듣고 있었는지 에그시의 몸이 살짝 떨어지며 저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도련님이 고백하는데 집사는 계속 거절을해. 신분차이가 있어서 결혼은 불가하다면서. 그리고 그 집에 좋은 혼사가 들어오는데 집사가 그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는거지."
"...연애소설이네요?"
"그런거지."
"당신과 나에 대한 설정은 뒤바꼈지만."
"재밌지 않을까?"
"...."
"우리이야기라면 역시 연애소설이 괜찮지 않겠니?"


반쯤 몸을 일으킨 에그시는 팔꿈치로 몸을 버티며 저를 내려다봤다.


"그럴거라면 원래대로 해요."
"흠. 글쎄."
"왜."
"나이많은 몰락한 귀족이 어린 시종에게 반했다는건 좀 파렴치하게 받아들여질것 같은데."
"알긴아네."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 쉬는 날이잖아."
"오전에만 잠깐 나와달라고 했어요. 오늘은 일찍 들어올게요."


하얀 알몸에 얇은 셔츠만 급하게 덧입은 그가 욕실로 향한다. 나는 그를 시선으로 탐하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얇은 이불로 허리아래를 감싸고 책상앞에 앉아 펜을 든다. 너에게 빚을 지지 않기위해 너의 이야기를 쓴다는게 모순적이라 난 자리에서 조용히 미소짓고는 펜촉에 잉크를 묻혔다.



-



"다녀왔습니다."


일을마치고 집으로 오는길 가랑비에 젖은 옷깃을 털며 다급하게 들어온 집이 낯설었다. 모든것이 그대로 인데 이 많은 종이 묶음들은 대체 뭐지?


"어. 늦었구나."
"해리. 이게 다 뭐예요? 게다가 그 앞치마는 뭐고."
"탈고 했으니 출판사에 넣어봐야지."
"지금요? 지금 밖에 비와요."
"그러니까."


그는 한손에 든 조리기구를 살짝 흔들어 보이다 다시 불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조금 신이 난것 같기도 했다.


"기분 좋은일 있어요?"
"글쎄."


그의 대답이 모호해 저는 고개를 돌려 여러묶음의 종이뭉치를 하나 들었다.


"읽어도 되요?"
"응. 그 앞에 1이라고 쓴것이 첫번째다."
"...설마 이게 다 한권이예요?"
"응."


새로운 글을 쓰겠다고 말한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완결을 냈다고? 이 많은 분량을?
살짝 눈살을 찌푸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에그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첫번째 종이묶음을 들고 식탁 의자에 앉아 조심히 묶인 끈을 당겼다.


'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익숙했지만 새로운 마음이 피어나고 부터는 모두 온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의 인사와 배려와 예의가 모두 당신에게 주어진 소임이란걸 알면서도 난 그 이면의 마음을 읽으려 했다. 혹시나 나를 좋아하진 않냐고, 나와 애뜻하진 않냐고. 하지만 벌거숭이 시절부터 나를 봐왔던 당신이 나에게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마치 부모와 같은 마음은 아닐까? 난 매순간 당신에게서 받는 애정이 다른방향으로 비뚫어지길 소망하며 매일아침 일을 꾸민다.'



-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눕자 잠시후 방으로 들어온 그가 먼지냄새가 묻은채로 제 위로 풀썩 쓰러진다. 저는 그를 끌어안고 고요한 미소를 띄며 그의 머릿결을 살며시 쓸었다.


"해리 너무해."
"뭐가."
"난 새드엔딩 싫다구요."
"그래. 나도."
"거짓말!"


아프지 않은 솜방망이가 옆구리에 와서 꽂혔다.


"어윽."
"둘이 결국 안되잖아요!"
"잘되지 않나?"
"결국 죽잖아! 그런거 싫다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였다. 어줍짢은글로 갈겨적은것이 누군가에게 이정도로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저는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기분이 들었다.


"결과만 중요하니."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죠!"
"에그시."
"못됐어."
"어차피 모든 결과는 같아."
"그런말만 하고!"
"모든 사람은 죽잖니."
"싫어요."
"...."
"해리, 그런말 안하면 안되요? 응?"


기어이 눈물이 터진모양이었다. 제 몸위에 덥친 그를 옆으로 누이며 그 위로 올라 얼굴을 바라보니 이미 눈물로 눈가가 엉망이 되어있다. 아침이면 또 붉게 부어있겠지. 아마도 이웃들은 가끔 내가 널 때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과정도 중요하단다."
"잔인해."
"지금의 우리는 과정일까, 결과일까."
"둘다요. 둘다예요. 과정이기도 하고 우리가 사랑한 과거의 결과이기도 해요."
"그래. 그래서 소중한거야."


눈물을 닦는 그의 손을 잡아때고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남겼다.


"난 이 과정을 사랑한다 에그시."
"당신이 저런 결말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아요."
"저건 그냥 소설이지."
"나랑 영원히 같이살아요. 네?"


영원이 거짓이란걸 알면서도 두손으로 내 뒷목을 잡아 저에게 가까이 닿는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러자."


그 거짓말에 만족했는지 그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제 얼굴을 부여잡고 깊은 입맞춤을 남겼다. 입술을 열고 치열을 훑고들어가 혀끝을 희롱하는 그의 키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극중 무엇이 너를 이렇게 애달프게 만들었을까. 제 아래 자리잡고 허리를 비틀며 걸쳐진 옷을 걷어내는 그의 움직임이 사랑스러워 나는 그 원인을 찾기보단 너를 품는 것을 택했다.


에그시의 움직임은 흥미로웠다. 주로 저의 리드로 움직였던 기존과는 달리 그는 적극적으로 제 몸을 탐했고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겉어냈다.


"하....하아...해리..."


신음을 섞으며 제 이름을 부른 것 조차. 그가 마치 저에게 취해있는듯 했다. 난 기꺼이 그를 향해 온몸을 내고 그가 원하는 것을 준다. 굳게다물린 그의 은밀한 곳이 저를 향해 활짝 열렸을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미 아이는 글속의 자신의 집사를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어린 도련님의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난 그에 맞는 답을 줘야겠지.


"하...에그시.."
"응...네..."
"자... 힘빼고."


처음인것도 아니면서 등을돌린 그는 이불보를 잡아쥐며 온몸을 굳혔다. 아마도 넌 나에게 이런 판타지가 있는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물론 마다할 생각도 아니지만.
깊게 몸을 집어넣으니 그의 몸이 동그랗게 말리며 툭툭끊기는 신음을 뱉는다.


"그럼..."
"하.....하아..."
"제 영원을 책임지시겠습니까. 도련님."






*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어 송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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